중학교 몇 학년 때인지는 모르겠는데...
그 날따라 아침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왔다.
마당 가운데 우물이 있고 멀리 청파동이 내려다 보이는 축대쪽으로는 앵두
나무와 모과나무 그리고 사철나무, 향나무가 담장을 대신하여 있다.
마당에서 집을 향하면 왼쪽,축대방향으로 5~6등분 되어 전체가 투명유리로
끼워 진 어른 키를 넘는 높이의 유리문 6짝으로 된 벽면이 있었는데...
가장 자리의 아래, 유리 한개가 빠져서 벽에 세워져 있었다.
누가 그랬지? 하며...집안으로 들어가서 물어보니 알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안쪽에서 살펴보니 흙,묻은 신발 자국이 집안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가운데 방과 붙어 있으면서 추울땐 비어 있는 넓은 다다미방을 지나 계단을
통하여 아무도 쓰지 않는 이층까지 갔었던가 보다.
유리를 제자리에 끼우며 무섭다기보다 도적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잠시했다.
우리가 사는 곳이 부자 동네는 맞는데 우리는 부자로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대부분의 집들이 그렇듯이 살림 살이라는 게 별로 없었다.
남의 집 이사할때 보면 장롱을 트럭, 앞 쪽으로 싣고 나면 이사, 거의 반은 끝난 셈이였다.
우리 집도 비슷해서 서랍 만 2~3개달린 아랫쪽 서랍장과 위쪽으로 문에 유리가 있어서 안에
이불을 개넣으면 빨갛고 파란 무늬가 어리어리 비춰 보이던 이불장하고 문에 기다란 거울
달린 옷장에 책상,그리고 둥그런 접는 앉은뱅이 밥상이 가구의 전부였다.
우리 부모님의 고향은 이북이다.
남북,길이 막힌지 십여년, 언제고 통일만 되면 바로 고향으로 돌아 가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살으셨던가 보다. 아버님께선 당췌, 가재도구나 살림살이엔 관심이 없으셨다.
여차해서 움직이려면 발목을 잡을 짐이란걸 815해방과 625을 겪으며 실감하셨으므로...
내가 봐도 집어 갈 만한, 그래서 돈으로 바꿀만한 것이 없었다.
그러니 수고에 비해 소득은 없었을 걸로 미뤄.. 안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같은 날인지 다른 날인지 잘 모르겠는데...
어머니? 아니...내가 어렸을 때니까...그냥, 엄마라고 하자.
엄마가 아프셨던거 같은데... 어쨋던, 그 날 내가 아침 밥을 하게 되었다.
혼자, 여자인 엄마께서 남자, 여섯사람의 뒤치닥거리를 도맡아 하셨는데...
교회, 여자 권사님들이나 집사님들이 우리집에 오시면 엄마를 위로 하는 말로 ...
셋째가 딸이였으면 말동무도 되고 집안일을 나눠서 하면 편하실 텐데...
하는 말을 종종 했었고.. 들었던 터 였다.
위로, 손하나,까딱 안하는 형들이고 아래로는 동생들이라 내가 엄마를 많이 도왔다.
김장철에는 엄마따라 장에 가서 배추,무우등을 사다 날랐지... 김장독 묻던가
이듬해,햇볕 좋은 날, 김장독 파낼 때도 좋아하기도 했지만 땅,파는 건 으례 내몫이고.
오래 돼서 기억도 가물한데..김장담글 때 배추꼬랑지 깍아 먹는 맛은 정말 좋았었다.
매우면서 생고구마 맛이 나는데...이 때 아니면 먹을 기회가 없어서 그런가? 더 맛있었다.
생각났으니 덧붙이자면...
남자들이 대개 미역국을 싫어하는 편인데... 우리집도 예외없이 다들 싫어했다.
그런데...나,까지 싫다고 하면 엄마가 너무 섭섭해 하실까봐
억지로 국그릇을 비우곤 했는데.. 지금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국이다.
김치를 먹을때도 대개 하얀 속살로 골라먹곤 했다.
그러면 남은 퍼런 잎사귀부분은 누가 먹게 될까?
물어 보나마나 엄마몫이다.
난, 그것도 싫었다.
젓가락에 집히는건 아무거나 먹었다. 아니, 일부러 퍼런 걸로 골라 먹었다.
다른 음식도 마찬가지였는데...
정~맛이 없으면 그냥 안 먹었다. 먹지도 않으면서 불평하면 엄마 속만 상하실까봐.
결혼하여 지금도 똑같다.
참! 아까 밥짓던 얘기로 돌아 가야겠다. 너무 멀리 온거 같은데...ㅎㅎ
쌀을 씻고 있었다. 쌀,씻던 바가지를 기우려 물을 버리다가 그만 쌀알을 흘렸다.
한,두알이 아니고 쪼금 많이... 근데, 그때 아버님께서 마당으로 나오셨다가
내가 있는 곳으로 오고 계셨다. 내기억으론 한번도 마당으로 나오신 적이 없으셨는데...
그리고 내가 왜? 수도가 있는 부엌을 두고 밖에서 그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보셨다.
기특하게 엄마대신 쌀씻는 날 보신게 아니라 바닥에 떨어진 귀하디 귀한...
나 보다 훨씬 쪼그만 쌀알들을 ...
난, 참! 아버지를 무서워했다. 사실, 절대로 무서우신 분이 아니셨는데...
농부가 일년을 정성들여 지은 쌀을 함부로 흘리...로 시작되는 말씀을
감히 손가락하나, 꼼짝 못한 채로 들어야 했다.
다시, 잘 생각해 보니 무서우셨던게 아니라, 내가 너무 어려워했던거 같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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