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세상에, 가족이 함게 살 집을 자신의 의도대로 짓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니, 평생에 한번이라도 자기의 집을 가져 볼 수나 있을까?
아~~ 지금, 내집에 살고 있다고...??
아파트나 집,장사가 지은것처럼.. 대부분, 이미, 지어져 있는 집에 들어가 살 뿐이지..
옛날에야 가족이 살 집은 설계도없이 각가족들이 알아서 지었겠지만..
지금은 집,짓는 방식도 많이 다르고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 부분도 있어서
아무나 할 수 있는건 아니다.
1972년, 우리가 살고있던.. 이제는 낡은.. 서울, 남산아래 후암동, 적산가옥 (1945년 8월,
미국의 원폭으로 일제가 무조건 항복하며 두고 간, 적국의 재산이였던 가옥) 을 허물고 그자리에
슬라브조 이층 벽돌 양옥집을 짓게 되었다.
큰 아들, 기현이 건축을 전공으로 대학을 졸업했기에 .. 설계를 맡겼는데..
후에 2 장의 설계도를 가지고 와서는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난, 본인이 그렸으며.. 다른 하난, 같은 과 대학동창인 친구가 그렸다고 했다.
아마, 친구의 설계도가 선택됐던 거 같다.
이제, 건축을 맡겨야 하는데..
큰 아들이 자기가 맡아서 직접 감독이 되어 집을 지어 보이겠다고..
어차피, 건축회사에 맡겨도 실무에 있는 자기 동창뻘들이 하는 거와 마찬가진데..
아들이 못미더워 건축회사에 맡긴다면.. 아버지가 못믿는 아들의 실력을 남인들 믿겠냐며..
설득하여.. 드디어, 공사가 시작되었다.
옆의 함경도 아바이집, 이층으로 이사를 하고 집을 허무는데..
대들보에.. 한자로 소화 xx년 백두산에서 가져왔음이 표시되어 있었다.
우리 나라, 땅에.. 우리 나라,백두산 나무로 지어졌으니...
엄밀히 말하면, 적산이 아니라 모든게 우리껀데.. 일제가 공짜로 살다 간 것이였다.
반년만에 완성되어 새 집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625 전부터 이남으로 오셔서 의정부에 정착하며 교회를 건축하는 일에
힘을 보태시기 시작하면서.. 부산으로, 대구로, 서울로.. 피난를 다니며
가시는 곳마다.. 전국, 8 군데에(?) 하나님의 몸인, 교회 건축에 열심이시더니...
이번엔, 하나님께서 그 정성에 감동하시었던지 정학선장로에게 가족과 함께 살
새 거처를 허락하여 주시였다.
그 집에 살면서 76년,둘째가 결혼하여 미국으로 가게 되었으며 셋째가 77년에 결혼하였다.
셋째가 결혼한 그해, 10월17일 부인, 이성옥여사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전날 밤, 장로님의 꿈에-- 喪(상)을 당한 집의 대문에 걸어놓는 근조라고 쓰여진 등을
보셨으며.. 퇴근하여 집앞에서 문을 두드리니.. 넷째,기복이가 대문을 열어주었다고--
아침이 되어.. 밥상머리에서 일본어를 잘~하시는 부인께...
꿈에서 본, 근조의 정확한 일본 발음을 물어 보시기도 하셨다고..
근데, 그날 낮에 큰 사돈댁에 다녀 오셔서 마당 청소를 하시던 이성옥여사께서
마당에서 거실로 통하는 유리문을 열고 들어오셔선 거실바닥에 들어 누운채 토하시고..
부엌에서 저녁 준비하다 달려 온 세째,며느리에게.. 나,마당에서 쓰러졌었다 말씀도 하셨다고..
그때, 이층 자기방에 있던.. 시동생,기복이를 부르고 성모병원에 근무하던 친정, 올케에게
전화하여 앰불런스를 보내달라고도 하고 해방촌에 있는 은제의원에 전화하여
의사선생님도 급하게 부르고 아버님께도 전화를 드리니..
벌써, 장로님께선 설명을 듣기도 전에 차를 보내마.. 하셨다고
뇌출혈은 촌각을 다투는 긴급 상황이라.. 손은 썼지만 어느 곳에서도 도움을 못받고
한창, 젊으셨던 나이에 하나님의 곁으로 그렇게 가셨다.
후에, 어머니께서 평소,집에서 혼자 기도하시며 녹음을 해 두신 테이프를 들었는데..
거기엔, " 나의 사랑하는 다섯 아들, 모두 좋은 배필을 맞아 하나님,보시기에 좋은 가정,
이루게 해 달라"는 기도가 녹음되어 있었다.
* 이 테이프는 한국에서 내가 쭉~ 보관해오다. 미국의 둘째에게 복사하여 보내주겠다고
큰 형이 빌려 갔는데... 이후에 돌려 받지 못하여 나,또한 더 이상 들을 기회가 없어졌다.
경북, 예천에 나가 살던.. 장자인 첫째의 가족이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왔으며
2 년후, 세째가 자기의 가족을 데리고 아버지의 집을 떠나 대구로 옮겨 갔다.
그리고, 네째와 다섯째도 아버님집에 살며 결혼을 하여 ..
테이프속, 고 이성옥여사의 기도대로 다섯 아들이 좋은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또한, 85년, 평광 교회의 건축 위원장이 되신 장로님께선,
압구정동에 건물을 지어 큰 아들가족과 이사를 하신후,
살아 생전 부인의 손,때와 모든 가족의 추억이 어린 후암동의 집을 판 대금 8 억원 전부를 ..
(다섯아들, 명목 5억원, 부인, 고 이성옥여사의 명목 3억원)의 의미로 교회에 건축헌금으로 보태어
이번엔 교회당을 목동에 잘~지어 하나님께 봉헌하는 큰 일을 잘 감당하셨다.
미국에 있는 세 아들이 따로 건축헌금하기를 바라셨지만.. 돈이 없던 나는 한 푼도 하지 못했다.
거기에 대해선 아무 말씀 없으셨지만.. 돈이 없어 효도를 못하는게.. 너무 죄송스러웠다.
평소,장로님께선 나..돈없다 하셨는데..
이 세상,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것이라는 뜻일 뿐, 실제로 재산이 없으셨던건 아니다.
살아있는 동안, 우리 인간은 잠시, 관리만 하기에.. 없다하시는 마음을 그대로 이해했으며
그래서, 다섯 아들중 아무도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태산 같은...내, 아버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 - 일꾼의 이력들 (0) | 2009.12.17 |
---|---|
19 - 왼 손은 모르는 오른 손이 하신 일들 (0) | 2009.11.15 |
17 - 남북 적십자 회담제의 (0) | 2009.09.21 |
16 - 장로님의 취미 생활 (0) | 2009.09.16 |
15 - 신앙생활과 삼촌 (0) | 2009.0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