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날씨다.
결혼식이 오전이기도 하지만 우리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어서 서둘러 준비하고 출발하였다.
일본에 살고 있는 나의 며느리 될 아이짱이 며칠전 LA로 와서 나의 큰 아들, 상진이의 외가쪽
친척들하고는 상견례를 하였으나 친가쪽하고는 서로 멀리 떨어져 살기에 마침 상진이의
큰아빠 딸 테미의 결혼식에서 만나보기로 했었다.
우리가 일찍 도착한듯 주위가 한가해서 안으로 들어가니 많은 하객들이 이미 와 있었다.
친지들과 인사를 나누며 또, 나의 큰 며느리될 아이짱을 소개하다 보니 제일 윗분이 안보이셨다.
그래서 테미의 외할머니이신 백권사님께 " 김 광훈 목사님은요? " 하고 어디 계신지를 물었다.
근데...대답이 ... " 돌아가셨어! 지난 부활주일에..."
" 네? " 놀랬다.
벌써 돌아가신 나의 아버님과 거의 동년배이시니 마음에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그동안 많이
건강해 보이셨는데...울음을 애써 참고 있는데 고맙게 아이짱이 말을 걸어왔다.
매년 이곳을 방문하셨던 나의 아버님께서 돌아 가신후에는 대신 내가 찾아 뵙자 생각하고
일년에 한번씩,연말이나 구정때 찾아 뵈었었다.
금년엔 구정이 벌써 지났음에도 여러가지 일로 아직 못 찾아뵙고 있지만 오늘 만나 나의
며느리될 아이짱을 인사시켜 드리면 일본으로 시집간 둘째딸 영미생각에 많이 기뻐하실텐데...
그 새를 못 참고 가시다니...허탈했다.
우리 오형제중 나만 빼고 네형제들의 결혼 주례며 내어머님의 장례일정을 다 감당해 주셨던 분,
그래서 더욱 아버님 처럼 느껴졌던 분이신데... 또한 최근에 당신의 입으로 말씀하셨던
" 너의 아버지와 나는 일제시대때 만주봉천에서 한교회(서탑교회)에 다녔대서..."
힘들었던 시대에 태어나서 남의 나라, 물설고 낯설은 만주에서 청년시절부터 같은 교회에서
하나님을 섬겼던 인연이 하나님의 품으로 가시는 날까지...알고 지낸 거의 60년동안 이어졌던
두분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은지가 어제 같은데...
4월 두번째주일에야 사모님을 찾아 뵙기로하고 전화를 드렸다.
울고 계셨지만 뭐라 위로드릴 말이 없다.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마침 나오는 사람이 있어 열린 문으로 아파트건물안에 들어섰다.
약속은 돼있지만 그래도 당황스러워 하실까 염려되어 핸드폰으로 지금 막 도착하였음을 알리니
벌써 알고 있는 방홋수를 다시금 알려 주신다.
내아내가 벨을 누르니 이내 문이 열리고 ... 내아내는 문,열어준 사람에게 목례를 하고 안으로 먼저
들어가고 나는 지팡이에 의지한채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뇌출혈의 휴유증인 눈의 장애탓도 있지만 열린 문 뒤 거실의 창으로 비치는 햇빛에 문, 열어준
사람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는데
" 기준이 오빠! 저 영미..." 난 그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 LA에는 영미의 동생이 여럿 살고
있으므로... 언니의 몇째동생인지? 를...
근데, 좀 이상하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나를 기준이 오빠라고 불렀던 동생이 없었다.
어려서는 어느정도 나이 차이나면 어울리는 일이 없었기에 친할 수 도 없었고
그 다음엔 미국으로 이민와서 성인이 다 되어 보았기에 친해질 틈이 없었다.
하여튼, 더는 말이 없기에..." 누구? " 하고 다시 물으니 "기준이 오빠! 저 영미에요."
영미는 결혼하여 일본에 살러간게 언젠데 그리고 장례때문에 왔어도 벌써 3주나 지나 일본으로
돌아 갔을 텐데...영미가 내 앞에 있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전혀 예상 못 했었다.
다가가 현관으로 들어서며 영미의 손을 잡았다. "이게 몇년만이니?"
내가 결혼하기 전 이였으니 31~2년은 된듯하다. 못본지가...반가웠다.
다른 사람들은 첫사랑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겠지만 난,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없는게 아니라 떠오르긴 한데...그 동안 내마음 한켠에서 이유도 모르게 부인했던거 같다.
그 불인정했던 사람이 영미다.
우린 너무 어릴적에 만났었다. 내가 중3 마지막인 그해 교회 망년회에서 처음 만났었다.
6개월전인가 ? 대구에서 새로 목사님께서 부임해 오셨는데 ... 그 목사님의 둘째 딸이 였다.
다른 아이들과도 친한걸보면 6개월전은 아니더라도 하여튼 몇달전부터 있었을 텐데
어찌된게 내 눈엔 그 망년회에서 처음 보였다. 당연히 누군지도 몰랐고...
그러고 보니 관심 없는것에 철저하게 무심한건 어릴적부터 그랬었나보다.
고교시절엔 교회에서 살다시피하며 친하게 지냈다.
평광교회에서 처음 여름수양회를 시작한 것도 내가 고1, 영미가 중3 때에
내가 중고등부 회장하고 영미가 부회장을 했는데 그 때 둘이서 추진해서 시작됐다.
그런 어느날 무슨 생각에선지 영미한테 내마음을 적은 편지를 직접 전해 줬는데...
답장이 없기에 나한테 마음이 없는 걸로 단정하고 내마음을 접었었다.
그리고 내 턱관절에 이상이 생겨 성가대를 고만두며 교회에서 멀어져 갔다.
그리고 내가 대학2학년 올라가며 신입생이 들어 왔는데 그중에 영미가 있었다.
겹치는 대학생활 3년동안 딱 세번 커피를 함께 마셨다.
세번이라는건 나도 의식하지 못했는데... 영미가 결혼하여 일본으로 가면서 ...
그런 얘기와 함께 건네 주더라며... 나도 처음보는 내모습이 담겨진 사진을 오랜
시간이 흐른후 내 막내동생이 나에게 주며 지나가는 말로 전해줘서 알게 됐다.
사모님을 위로 하러 갔다가 전혀 뜻밖의 사람을 만나는 바람에 사모님과는 인사치례만 했다.
일어설 시간이 되어 사모님께 작별을 고하니 영미가 따라 나왔다.
아파트건물 문앞에 이르러 나의 아내가 옆에 있음에도 잠시 영미를 끌어 안았다.
살아서건 죽어서건 오늘 이순간이 우리의 마지막일 것이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아라 나의 첫사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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