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 같은...내, 아버지

9 - 단신으로 월남하다.

chevy chevy 2009. 3. 13. 10:48

 

 고향에 돌아 온 지... 이제,  일년 반이 채 못 된 1946년 11월초순.

 

광복을 맞은 기쁨도 광풍지나가듯 잦아들고 차라리, 우중충한 분위기가 감도는 고향 땅에서

 

첫째 아들, 기현이 태어났다.

 

해방이후, 북쪽에  들어선 사회주의 색채가 짙은 김일성의 공산당은 소련을 등에 업고 

 

지주제를 없애고 토지를 몰수하여 재분배하는 토지개혁과 여자에게도 선거권을 주는 등...

 

그 동안 철저하게 억눌려 살았던 소외계층 사람들에게 인심을 얻기 시작하며 북한 지역만의

 

도,시,군을 대표하는 인민위원회 선거실시와 통화개혁으로  남북한의 격리를 시도하였다.

 

또한, 정치적인 후원세력으로서의 기독교에 대한 간섭은 갈수록 심해지기만 하였는데 반공

 

노선이 강하고 교리에 반한다며 이에, 비협조적이거나  오히려, 공산당과 분리하여 교회와

 

교인들을 지키려는 목회자들을 제거하려는 의도로 순교가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공산당이란 정체가... 점점 시간이 지나며 이제는 결코,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만 볼...

 

강, 건너의 불이 아니란걸 알게 되었다.

 

  

광복을 맞은지 벌써 2년이 되어 가는데... 서로 지혜와 힘을 합하여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은

 

조국, 고향 땅에서... 이제까지 한 거라고는 이웃의 재산을 빼았고 교회를 탄압하며 죄없는

 

이들까지 집밖으로 끌어 내 죽이고 있었다.

 

단지, 공산당을 반대하여  그들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건 ...

 

해방된 조국에서  너무 억울하였으며... 같은 민족임에도 일본보다 더 악랄하였다.

 

하나님의 사람, 정학선은 ...

 

어디로 흘러 가는지도 모를 암울하고 무력한 시대 상황에서 방관자로 있을 수는 없었으리라.

 

그래서, 평양으로 돈,벌러 간다하고 이웃의 친구한테 쌀,반가마를 빚내어

 

1947년 부모형제와 부인, 그리고 핏덩이 아들을 뒤로 한 채 단신으로 고향을 떠났다.

 

기차가 평양역에 도착하였으나 ...

 

생각해보면 이곳도 공산당 천지인 고향과 별반 다를 것이 없을 것만 같아서 내리지 않았다.

 

이때까지도 남북간 사람과 편지의 왕래가 가능하였기에... 그대로 종착지인 서울역에 도착했다.

 

서울은 초행길이라 갈 곳도 ... 아는 곳도 ... 당연히, 아무  연고가  없었다.

 

고향에서 같이 연수교회를 섬기다가 일년, 먼저인 46년에 월남하여

 

서울 영락 교회설립에 관여하시고 시무 장로님으로 계시는  정용태장로님을 찾아갔다.

 

그런데... 장로님을 만나서 뜻밖에 만주, 봉천에서 쌀,배급 회사에 근무하며  알게 된...

 

정미소를 운영하다 집안 문제로 정리하고 먼저 귀국하신 박사장님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간곡하게 붙잡는 정용태 장로님과 헤어져 박사장님이 계시다는 의정부로 찾아갔다.

 

박사장님은 의정부에서 조선장유라는 간장,고추장등... 장류공장을  운영하고 계셨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조국에서의 재회라 그 반가움의 크기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으리라.

 

 

그리하여, 조선장유에 의탁하여 의정부에서 고향을 떠난 타향살이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선 그렇게 미리부터 준비하여 기다리고 계시다가 도와주신다.

 

여기에서도 믿음 생활 또한, 열심으로 하여 의정부 제일 장로교회의 전신인 의정부 장로교회의

 

설립에 물심양면으로 기여할 수 있었음은 ...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이였다.

 

겨울철엔 남보다 아침일찍 교회에 출석하여 미리 준비한 나무장작으로 난로에 불을 지펴서

 

예배처소를 따뜻하게 뎁혀 놓고 또한,교회주변을 깨끗하게 청소를 하였으며

 

교회의 회계는 물론이고 자신이 몸소 어린이 주일학교 반사로 봉사하는등...

 

하나님의 집을 내몸같이 아끼고 사랑하였다.

 

한편으로  교회도 나날이 부흥 되어갔다.

 

 

부족하고  어려움이  많은 타향 살이이긴 했지만 성실한 믿음으로 교회와 생활이 안정되자

 

고향에서 오늘도 안절부절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부인, 이성옥에게

 

"혼자, 아이를 데리고 살기가 힘이 들면... 정학선이라는 사람을 찾아 가라" 는

 

내용의 편지, 한통을 가명으로 띄운다.

 

언제,  또,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 세상일에 대비하게 되어  혹시 있을 지도 모를

 

우편물 검열을 염려하여  사전에 그리 약속을 하여 뒀었다.

 

본인이 ... 본인을 찾아가라는 뜻은 ? ... 결국, 오라는 뜻이다

 

그러나, 우편물을 주고 받을 수 있긴하지만... 이제, 사람과 기차의 38선 통행은 제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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