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민 초기부터 밸리에 살게 되면서 다니던 노스 헐리웃의 열린문교회를
카마리오에 이사와서까지 장장 왕복 100마일 거리를 12~3년동안 다니다가...
몇몇 우유부단한 사람들 덕분에 잠시 방황을 하고
2001년 7월 아버님께서 마지막으로 미국을 다녀 가신후 에브리데이 교회의 전신인
밸리 사랑의 빛 선교교회로 옮겨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에 무어팍으로 이사하면서 타의에 의해 교회에 등록도 하게 되고...
교회출석 시작하면서 등록을 하지 않은 건 내가 좋아해서 내가 결정하고 내 발로 가는거지만
구속당하는 기분이 들면 바로 머릿속은 거기서 빠져 나올 궁리부터 하기에 소속되는게 싫었다.
그다음해 봄이 였던가?
캘리포니아, 여기저기에서 큰 불이 엄청 많이 났었는데... 그때 우리집 동네에도 불이 번져 왔었다.
불이 번진다는 뉴스를 알게 된... 학교가 있는 오렌지카운티에 나가 살고있는 작은 아들이
걱정스런 마음에 새벽에 집으로 향했지만 118번의 토팽가와 그리고, 하나있는 로컬길을 막는 바람에
집에 거의 왔다가 들르지도 못하고 .. 그냥 돌아가기도 했다고..
만약을 대비해서 내,밴차에 몇가지 물건을 싣기도 했었는데 ㅋㅋㅋ 나중에 보니
애들 사진첩 몇개 하고 여러가지 서류가 들어 있는 체스트, 그리고 내, 반바지 하나였다는 거.
정작, 긴급상황에 부딛혀 보니...아무 것도 중요한게 없었다. 마음이 싹 비워지는게 다 포기가 되었다.
쓸고 닦을 수 있는 것도 비로소 그때가 그래도 형편이 좋을 때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주일날 아침,
비가 오고 있었지만 개한테 밥을 주려고 마당에 나가니 길가쪽 마당 가장자리에 물이 고여 있었다.
속으로 비가 이렇게 많이 왔었나? 생각하고 집안으로 들어 왔다.
그리고 잠시후, 교회에 갈 시간이 되어 이층 창문으로 아직 비가 오고 있는지를 확인하려다가
깜짝놀랐다. 우리집 뒷쪽 파킹장 전체가 물바다였다.
아! 그래서 아까 길가쪽 마당에 물이 고여 있었구나 하는 뒤늦은 깨달음.
빨간, 구식 승용차한대는 이미 철망으로 된 담을 부수고 커다란 하수구까지 떠내려가서 하수구 입구를
막고 있었고 고급 승용차하나가 부서진 담에 걸려 안 떠내려 가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바닥이 높은 내,밴과 큰 아이의 새로 산 차도 하필, 거기에 있어서 보고있는 나를 안스럽게 하고 있었다.
911에 전화를 하니 벌써 신고가 들어와서 알고 있었다.
결국, 움직일수 있는 차가 없어서 교회에는 못가고 하루종일 차를 씻고... 닦아내고
한국에서도 남의 이야기로만 알고 살았던 불난리와 물난리를 살기좋은 미국에 와서 한번에 다 겪었다.
겪어 보니... 피신할 겨를이나 재산상의 피해로는 불보다 물이 더 무섭더라;;;
그동안 궁금하였을 여섯번째에서 예고한 음악으로의 두번째 손짓 이야기를 이제 밝힐때가 됐다.
2003년, 주일날 아침예배, 설교시간에...
앞에서 오른쪽으로 있는 키보드에서 뒤로 두번째줄에 내아내와 둘이 앉아 목사님 말씀에 빠져
있는데 말씀중에 그 날따라 앞에 앉은 내쪽으로 오시더니 엉뚱하게 "성가대하지 그래요?"하는 거였다.
내 바로 앞에 키보드 연주자가 있었고 그옆 안쪽으로 청년부에 가야 할 젊은 남자 두사람뿐이였지만
나하고 목사님의 눈이 맞았던 거 같기도 한데... 여보, 나한테 그런 거 맞지? 쌩뚱맞게 무슨말이야?
나를, 우리집에서 아버님 추도예배를 드렸을 때 한번 보긴했으니 안다고 쳐도
내,목소리는 어떻게 안다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다음달 구역예배엘 갔다.
거기에서 페퍼다인대학의 교수로 있는 장집사님을 만났는데... 이 분이
날 보자 3부 성가대 지휘자가 나를 찾는다고... 다음주에 성가대에 꼭 오라고 ...하는데...
얼마전 주일날 있었던 목사님의 "성가대 ..." 생각에 " 지휘자가 날 모르는데...농담은..." 했다.
근데, 그다음 주일날 예배,마치고 교회 뒷마당(리날디 길에 있는 학교강당에서 예배볼때) 에서
친교를 하고 있었는데...
새신자부의 여자,임 집사님이 날 보자마자 내손을 잡아 끌더니 같이 갈데가 있다고...하고선
많은 사람들 틈에서 2부 성가대 지휘자인 이성희집사님을 찾더니 영문도 모르는 나를 소개하는 거였다.
그날, 거기에서 바로 성가연습실로 끌려가서 (새, 됐다) 성가대원이 되었다.
나도 지금까지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는지 영문을 모르겠다.
3부로 오라던 장집사의 말을 거스르고 2부로 갔으니 장집사님이 삐진것도 같은데...
고등학교 다닐적에 턱,관절때문에 고만 둔 교회성가대를
30여년 동안 내멋대로 세상구경하다가 비로소 제자리로 돌아온 기분이였다.
그리고 다음 해, 고교동창인 정지원군을 또한 30여년만에 만나게 되면서
학창시절 음악쌤으로 부터 합창단하라는 첫번째 입질을 받은지 30여년만에
세번째 손짓을 받아 OB (Old boy ; 졸업생)로 숭실 합창단에 조인하게 된걸 보면...
이 모든것이 어떤 각본에 의해 진행된것처럼 음악에 대해 어떤 계획도 없었고
또한, 전공한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소리가 특별하지도 않은 단순 평범한 나를
미리 성가대에서 워밍업을 하여 준비시켜 놓았다싶은 마음에...
내가 몰라서 그렇지...하나님은 한번도 내,손을 놓으신적이 없음을 깨달았다.
집에서 회사는 북서로 한 시간거리이고 합창연습하는 LA는 반대인 남동으로 한 시간거리였다.
내가 사는 무어팍이 중간이지만 그런 건 아무 상관없이 회사끝나고 연습 가려면 두시간 걸렸다.
매주,월요일에 연습이 있어서 회사 퇴근하여 집에 오기 무섭게 샤워하고 옷 갈아입고
합창단 연습갔다 오곤 하는데...
퇴근하는 차들이 몰리는 시간대라 연습시간에 맞춰 나가느라 진짜 힘들었다.
어느날,길이 막혀서 꼼짝 못하고 서 있는데 2사람이상 타고 있으면 이용할 수 있는 옆의
카풀레인은 잘 빠지는게 부러워서 나도 카풀레인을 이용하기 위해 만만한 아내에게 제안을 했다.
나, 연습가고 집에 혼자 있기보다 같이 나가서 일주일에 한번쯤 LA에 사는 친구들 만나는게 어때?
예상한대로 시작은 그렇게 누이좋고 매부좋은 생각으로 되었지만 ...
결과적으론 지금, 뇌출혈 후유증으로 내가 운전 할 수 없게 될것을 대비하여
미리 훈련시키신 걸로 생각되어진다.
숭실 OB 부지휘자인 이정욱이 새로운 합창단을 만들기로 하여 함께 하기를 권하였다.
쥬블리 합창단이였는데...남녀혼성에 스폰서가 있어서 따로 비용 들어가는 게 없다고도 했다.
어차피, 함께 다니던 우리부부에겐 안성맞춤이라 안댕기는 건 아니지만
성가대를 하기 시작하며 갑자기 노래와 얼키고 설키기 시작했다.
노래를 워낙에 좋아했던터라 싫거나 그런 건 전혀 없는데...
월요일에 이어 화요일까지 LA에 나갔다오기가 은근히 부담스러워 계속 사양하던차에
양노 보건센타에서 위문 공연을 한다기에 구경삼아 먼 길을 찾아갔다.
사실,할 마음이 전혀 없었으면 그곳엘 가지도 않았겠지만...그 날 거기서 코가 꿰었다.
월요일,숭실 OB합창단이 연습장소로 쓰는 빌라델피아교회를 화요일에 사용하고 있었다.
첫날,지휘자가 우리부부를 소개하며... 정기준 단원은....여차여차하고...성실한 분 입니다.
뭐, 특출한 게 없으니 마땅히 소개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의 "성실한 분입니다" 에서 오히려,내가 감동을 받았다.
나의 아버님으로 부터 내가, 아니.. 우리 오형제가 귀가 따갑게.. 들은 말씀이
"어디를 가던 항상 성실하라" 였는데...
누군가의 눈에 내가 그렇게 비춰 보였다는 게 너무 기뻤고
나의 아버님을 조금이라도 닮아간다는 게 또한, 기뻤다.
쥬블리 합창단은..
사람, 하는 일이 그렇듯이 언젠가 벌어질 일이 앞당겨지느라.. 창단한지 몇달 안되어
이듬 해, 2006년1월초에 스폰서이셨던 단장이 고만 두면서 존폐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단원들끼리 합심하여 LACC 합창단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5월에 창단 공연을 하기로 정하고 열심히 연습에 매진했다.
4월초에 벌써 악보를 거의 다 외웠다.
나뿐만 아니라.. 단원전체의 분위기가 그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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