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동안, 집 페이먼트를 잘 내고 있었음에도 문제가 생겼다.
2001년 4월에 제,달치 페이먼트를 보냈는데...
다음달 청구서에는 두달치를 받은 걸로 해서 5월분은 이미 낸 걸로...되어 있었다.
그래서 첫번은 4월분으로 맞는데... 두번째것은 너희들의 실수라고 편지를 써서 보냈다.
그런데, 이 정신,없는 것들이 두개,다를 없던 걸로 해서 4월치,조차 안 낸 걸로... 내라고 날라왔다.
모르는 척 했으면 한달을 이익보는건데...공연히,정직한 척 했다가 낸것까지 더 내라고 하니...
나는 계~속 정정을 요구하고 ...은행은 몇달이 지나도록 정정을 해 주지 않고
그런 중에 공동으로 Camarillo 집을 샀던 사돈이 차를 사려고 딜러에 가서 크레딧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집,페이먼트가 한달이 계속 밀리는 것을 알고...어찌된 일인지? 전화가 왔다.
결국, 설명하는 나도 화가 나서.. 집을 팔고 계산을 정리하였다.
89년에 카마리요 집을 사자마자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여 구입가격 아래의 상태로
12년을 살았는데... 팔때는 약간 올라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때가 2001년 중순으로 부동산 가격이 오르기 시작 할 때 라는 걸 팔고나서 알았다.
그렇지만 상관이 없다.
살던 집이 많이 오르면 좋긴 하지만 그대신 앞으로 사야 할 집도 같이 올랐을 터이니...
결국,그게 그거다. 팔면서 다행히, 동시에 무어팍에 작은 집을 내,몫의 돈으로 Down pay하고 샀다.
작은 집을 산 것은 ...마당이 넓은 집에 살아보니...
토요일은 뒷 마당 청소에 일요일은 앞 마당 정리에 휴일이 없더라.
집이란 게 편히 쉬려는 목적일 바에는
시간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작은 집이 최고란걸 알았기에...
그 당시 우리랑 함께 살고 있는 강아지 3 마리가 있었다.
함께 살 수 있는 조그마한 마당만이라도 있는 집,찾기를 바래고 기도 했는데...그렇게 되었다.
물론,이집도 결정 할 즈음, 밤에 잠깐 와서 보았다. 근처에 무어팍 칼리지가 있어서...
처음엔 학교 기숙사로 오인 할 만큼 나무가 많아서 마음에 쏙 들었다.
요새,타운 하우스 짓는 스타일이 마당,거의 없고 건물들이 서로 붙게 지어서 삭막한 지경인데...
이건,뭐~ 숲 속 마을이였다. 특히,우리집은 뒷 쪽이야 ..여느 집과 비숫하지만
앞 쪽으로는 차에서 내려서 잠시, S자 모양의 숲 길을 걸어가야 하는데...별장이 따로 없다.
이사하는 기분도 신나게... 이사하기 며칠 전, 집앞에서 처음으로 거라지 세일도 해보고...
U-hall에서 트럭을 빌려 짐을 나르는데...
새벽까지 옮겼는데도 아직 멀었다. 그래서,나머진 포기하고 중간에 그만 두었다.
돈,아끼려고 새벽에 트럭을 반납하고 와서 내,밴에 실려있는 짐은 내리지도 못하고 쓰러져 잤다.
물론, 짐,실려 있는채로 다음날 회사 출근하고 ㅋㅋㅋ
회사랑은 25분정도 더 멀어졌지만
지나 다니는 Santa Rosa 길이 마음에 들어 그정도는 감수할 만하다.
2001년 봄,아버님께서 미국으로 오셨다. 카마리요에서의 마지막 해였는데..
아버님의 미국,방문도 마지막이 되었다.
이제,몸이 많이 불편하셔서 이번에 오실 땐 네째인, 기복이가 동행하였었다.
동생은 일이 있어서 먼저 귀국하고.. 아버님 가실 적엔 내,아내가 말동무 되어 드렸다.
공항에서 제,손을 잡으시라 했는데도...넘어질까 주위의 벽이며 손잡이며 마구 잡으시기에 ..
" 아버님! 더러우니까 아무데나 짚지 마세요."하다가 나중엔 짜증스런 투로 말씀을 드렸는데...
지금,내가 뇌출혈후 주변을 더듬으며...
항상, 손을 깨끗히 하셨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주위를 짚으셨던 아버님생각에...
그때, 나의 눈 높이로만 배려 하는 척 했음이 후회가 된다.
내,아내가 아버님모시고 한국에 간 첫번 주일인 2001년 7월22일
나는.. 아는 사람의 소개로 밸리에 있는 사랑의 빛 선교교회를 처음 찾아 갔다.
교회 주차장에서 21번째 이야기에서 밝힌 옥스나드 옷가게를 보러 왔던 반가운 얼굴도 만나고...
평생을 교회 출석하면서 어느 교회서건 설교시간만 되면...눈꺼풀이 무거워지는 게
완전 자동이였는데... 여기선, 목사님이 말의 크기와 속도등을 연구하는지..
마지막, 끝날때까지 또릿또릿하게 깨어 있었는데.. 이런건 처음이였다.
사실,어느 교회엘 가던 목사님의 설교 말씀이란 게 거기서 거기다.
같은 생명의 샘물인 성경에서 나오는 말씀이라
담는 그릇만 서로 다르지 그 안의 물,맛이야 똑 같은 것임에는 틀림이 없는데...
졸리운 건... 말씀에 문제가 있는게 아니라 같은 말씀이라도 전하는 요령 탓 일것이다.
오늘,비로소 그 요령을 터득한 선포자를 만난 것 같다.
만약을 생각해서 몇해 전에 검정 양복과 검정 넥타이를 준비했다.
한국에서 걸려오는 전화가 무서워지면 그런 준비를 시작 할 때인 것이다.
2002년 8월, 서울에 살고 있는 동생한테서 전화가 왔다.
얼마 전부터 아버님,편하시라고 노인병원에 입원 해 계신데...
갑자기 상황이 좀 안좋아 보인다고...그러니 왔으면 좋겠다고...
근데,그날이 토요일인가? 일요일이라 어찌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저녁에 "형! 안 올꺼야? " 하는 또, 한차례의 전화.
드디어, 월요일, 표를 준비하여 혼자 한국으로 갔다.
혹시나 해서 검정색 양복도 챙기고...
공항에 마중나온 동생과 제수씨의 전혀 급하지 않은 표정에서 한 시름 놓았고
아버님계신 병원으로 가는 길에 밥이나 먹고 가자기에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아버님, 배 고프시겠다. 누구 시중드는 분이 있는거야 ? 어서가자"는 내,말에...
"형이 몰라서 그러는데... 지금,아버님께선 의식이 없으셔...밥,먹고 안먹고가 중요한게 아니야."
그래, 동생네도 남을 챙겨주는 건 둘째가라면 서운해 할 사람들이다. 더구나 아버님이시라면...
근데, 밥먹고 가자할때는...지금 가나, 조금 지체되나 상관 없다는...희망이 없다는얘긴데 어쩌지?
그날, 비가 엄청 내렸다.
가는 곳마다 물 바다였다.
드디어, 병원에 도착하여 이층에 있는 병실에 들어 갔다.
병상이 4-3-3-4 이렇게 네줄로 있었나? 하여튼, 넓은 방이였다.
들어서자 왼쪽 두번째의 침대에 아버님께서 젖은 거즈로 눈을 가린 채 누워 계셨고
머리 맡에는.. 숫자가 깜빡거리는 모니터,계기판이 있었는데... 괜찮은 상황이아닌거 같았다.
지금은 의식이 없으시다기에 우선,세째가 왔음을 기도로 말씀드렸다.
계기판의 숫자가 커지는 게 좋은 건지? 작아져야 좋은 건지를 모르겠는데 ...
계속 변하는 숫자판을 보고 있자니 어느 쪽을 응원해야 할지...답답하였다.
문득,발쪽을 쳐다보니 양말이 신겨져있지 않은 아버님의 맨발이 눈에 들어왔다.
에어콘 바람이 춥게 느껴지기에 발이 시려우시겠다 싶어서 아직,동생의 차에 실려 있는
내,가방에서 내가 신으려고 가져온 양말중 한켤레를 가져다 아버님발에 신겨 드렸다.
근데,이 모습을 제수씨가 본 모양이다.
얼마전 편지에 아버님곁에서 오래 있었으면서도 그런 것까지 미쳐 생각 못하여 부끄럽다고...
아즈버님한테 너무 감동받았다고 써 져 있었는데...그건,그렇게 생각 할 게 전혀 아니다.
곁에서 어른을 모시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데...
넓은 마당을 빗자루로 청소,깨끗히 해 놓았다면 ...내가 한 거라곤 거기서 티눈 하나 치운 것 밖에는...
수요일이 되어 아침에 담당 의사샘한테 앞으로의 진행상황을 설명, 듣고 있을 때 연락이 왔다.
아버님의 심장이 멎었다고... 의사샘이 전기 충격기를 준비시키고 급히,이층으로 갔다.
한참동안 무진 애를 쓰다가 땀까지 흘리는 모습의 의사샘도 그렇지만 저렇게 고통을 감수하며
호흡을 찾으신들 어차피 의식도 없으셔서 아무 것도 모르실텐데 ...욕심일랑 버리고
그만,엄마곁으로 보내 드리자 싶어서..큰형,옆으로 가서 " 형! 이제,그만 보내 드리지요? "했다
그렇게 우리의 곁을 떠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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