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물 다섯번째

chevy chevy 2012. 2. 15. 02:09

 

벌써, 6 년의 세월이 지나가고 있다.

뇌 수술하고 가족과 집이 있는 미국으로 귀국한 이후를 쓰려한다.

 

큰 아들은 윌셔에 있는 항공사 LA 지사에 근무하지만 공항에도 아들이랑 친한 회사 선배들이

있었기에.. 도움을 받아 편하게 공항을 빠져 나왔다.

 

몇몇 친구들과 두 아들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는데.. 인사를 나눌 틈도 없이

윌~췌어를 미는 사람은 나를 주차장의 차에 앉혀놓고 사라졌다.

 

인천공항에서 이륙하기전 까지 걱정과 두려움에 비해서 상당히 수월하게 집에 도착했다.

 

그러나, 집에 오자 뇌출혈을 감기 몸살정도로 우습게 생각했었나 보다 ㅎㅎ

몇달, 집에서 잘~ 쉬다가 회사에 출근할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서울의 병원에서 퇴원할때, 한달치 복용할 약을 처방받아 가져왔었는데..

처방받은 약중에 우울증 약이 포함된다고 해서.. 내가 오해를 했었다.

 

뇌를 조금 건드렸을 뿐인데.. 무슨 우울증 약까지 끼워서 팔아먹냐??.. 고

근데, 하루, 이틀 지나며.. 걷는것도, 눈에 보이는 것도 엉망이고 할 수있는 게 없으니 우울증이 생기더라

 

그래서, 두 달만에 전부터 다니던 두 군데 합창단과 교회성가대에 다시 나가기로 했으며

그 곳에서도 크게 환영해 주었다. 

약의 도움도 있었겠지만.. 함께 노래를 하며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LACC 합창단의 창단 연주는 서울서 수술받던 날, 나와 아내없이도 이미 성황리에 마쳤지만

2006년 8월12일 윌셔 이벨극장에서 하는 LA 숭실 OB합창단 정기연주가 남아있었다.

 

그러나, 남아 있으면.. 뭐~~ 하냐고요.

수술전, 가사를 거의 다~ 외웠었지만.. 이젠, 혼자 걸을 수도, 서있을 수도 없는데..

서울과 뉴욕, LA 숭실 OB가 함께 하는 15회 정기연주를.. 객석에 앉아있는 걸로 만족했다.

 

회사엘 못나가 수입이 갑자기 없어졌으니.. EDD ( Employment Development Department )

에 실업자 신청을 하려해도 방법도 모르고

어디에.. 어떻게 서류를 진행해얄지도 모르겠고.. 참!!난감하더라

 

근데, 문제는..장애자협회에도 찾아가고 한인회에도 알아봤는데..

도움받을 수 있는 곳이 한 군데도 없고~~.

 

이 눔의 시끼들은 간판이나 명예를 얻을 수있는 곳에는 대가리 피,터지게 싸우면서

정작, 도움주고 봉사하는 곳은 없었다.

 

다행히, 수수료받고 대행해주는 곳을 수소문해서 16개월인가?? 도움을 받았다.

본래, 일년 단위인데.. 일년후, 갱신을 해서  4개월을 더~~

 

알고보니..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 인정을 해야 EDD에서 도움을 주는거라 

회사에서 내가 많이 사랑받고 있었다는 것에 넘~ 고마웠다.

 

지금, 일부러 자세히, 기록하는 것은..

이런 일이 생기면 안되지만.. 어느날, 갑자기 황당한 경우를 당한 사람을 위해 

혹시나 사람 일은 모르기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EDD에서 도움이 끝날때쯤, 사회보장연금(SSI)을 신청했으며..

집과 가까운 곳의 지정병원으로 가라는 연락을 받았다.

 

여기서, 내가 잘못했다.

물론, 그땐, 이 곳에 왜 가라는 건 지도 몰랐으니..

 

주위에서.. 지팡이를 쓰라는 것도..내가 노인도 아니고..곧, 회복될텐데..무슨~~

이런 이유로.. 비틀거리긴 했어도 지팡이 없이 걸었으며

의사의 이거 들 수있냐는 물음에 뭔지도 모르면서 못들면 안 되는줄 알고 열심히 힘을 썼다.

 

나중에 알았는데.. 그게 내가 일을 할 수있는지, 없는지 심사를 한 거 였다.

이로써 넘~지나치게 성실했던 나는 일, 할 수있는 걸로 결과가 나왔다.

 

다시 말해서,  난, 일을 할 수 없음에도.. 그건, 내생각이고..

심사한 의사 소견으론.. 일 할 수있어 보여 "혜택받을 자격없음" 으로 SSI 신청은 무위로 끝났다.

 

인생, 살면서 융통성도 좀 있어야 하는데.. 너무 곧이 곧대로 사는 것도 본인과 주위만 피곤하다.

간단하고 쉽게 갈 수있는 걸, 일년 반 이라는 지루하고 먼 길로  돌아 가게 되었다.

 

 

뇌출혈 발생 몇해 전, 큰 형님이 주셔서 큰 형에게 맡겨놓은 돈이 있었다.

일부러 미국으로 안가져오고 한국에 남겨둔 적지않은 돈이였는데.. 그때, 다~없앴다.

 

그후, 사회보장연금(SSI)을 다시 신청했는데.. 한번 심사에서 탈락하면  통과가 힘들다고 ㅠㅠ

둘째가.. 나때문에  병원. 가는 일과 서류신청하는 일을 돕는.. 한편, 본인 일하며 알게된  

신경전문 의사의 소견과 내 담당의사의 소견이 들어가고도 한참후, 공청회 날짜가 잡혔다. 

 

마지막 기회이며.. 이제 더 버틸 생활비도 남아있지 않았다.

공청회가 있을 빌딩에 일찍 도착해서 직원에게 도착을 알리고.. 시간이 남아

 

그들이.. 더도 덜도 말고 있는 그대로 보고  제대로 판단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다.

내, 변호사는 러쉬아워에 길이 막혀서 못오고 사무실의 다른 변호사를 대신 보냈다.

 

서류도 제대로 챙겨보지 못한 그 변호사가 한거라곤 인사한거 밖에는 없고

대신, 통역해 주는 여자분의 도움이 컸다.

 

신청자가 할 수있는 가능한 일의 목록을 심판관이 옆의 보조 보는 분에게 물었다.

컴퓨터로 하는 거라 결과는 금방 나왔는데.. 앉아서 돈받는 Cashier.. 그것도 두 시간이내.

 

자기네 끼리 의논을 하더니..

신청을 받아주는 대신  오늘 날짜부터 계산하는거랑, 

 

지난 시간까지도 소급해서 받으려면..  지금까지는 없던 거로 하고

처음부터 다시 신청해서 시작하는 건데.. 언제 결과가 나오게 될지 모른다고.. 

지금, 결정하란다 ㅎㅎ

 

내상황을 나의 둘째 아들이 잘 아니.. 의논을 해야겠다고, 하니..

아무하고도 의논할 수없으며.. 지금, 판단하고 결정을 하라고.. 

 

지금, 당장 생활비도 없는데.. 세월아~ 네월아~ 할께 뻔한데..

지금까지껀 다~ 잊고  오늘 날짜부터 연금을 받기로 했다.

 

신청한지.. 1년6개월만에, 퇴원한지 2년만에 퇴직나이는 안됐지만

일할 능력이 전혀 없으니.. 퇴직을 당겨서 인정해준다고..

 

집으로 가려고 아래층으로 내려오니..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노인 한 분이.. "우리는 어떻게 살라는 거냐며~" 직원에게 울며 하소연하고 있었다.

 

그동안 착실히 사회보장 세금 낸 것을 돌려 받는건데도

여긴.. 총소리없는 또, 다른 전쟁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