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vy chevy 2010. 2. 27. 16:56

 

내, 아버지에 대한 글을 마치자 많이 허전했다.

내가,  나를 글로 표현하는것도 쉬운게 아닌데..

섣부른 글솜씨로 누를 끼친게 아닌가?.. 약간 후회되기도 하고..

 

여튼,  따스하고 넓으신 아버님의 속 마음을 지나온 발자취만을 더듬어 표현하기엔

내,솜씨로는 부족함이 너무 많았다는 느낌이다.

오히려, 이 글을 쓰며.. 아버님에 대해 구체적으로 더~ 잘 알 수있게 되었다.





하지만,

오늘, 이 글은.. 쓰기까지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참..!  많이 망설였다.

 

그 날, 캘리포니아, 옥스나드 바닷가에 나,혼자 아버님을 동행했었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는 당사자를 위하여..

본인의 반성이 필요할꺼 같아서 이 글을 쓴다. 

 

우선, 배경이야기이다.

 

***

 

1992년 2월, 아버님생신 즈음이다.

내가 하고있는 장사가 잘 안돼서 치우고 회사에 취직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취직을 하게 되면.. 이제, 내마음대로 시간을 낼 수도 없을 것 같고.. 해서,

시간이 있을때 한국에 다녀 오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보니... 금년이 마침,  아버님 칠순이셨다.

근데, 돈이 없으니.. 아버님선물은 고사하고 비행기 표값이라도 마련해야겠는데..

 

그때 알게된게..  여기서 물건을 사가면 비행기표 편도값이 나온다는거 였다.

한국과 달리 여긴 약국이 편의점식으로 만물상이다.

 

먼저, 돈을 지불하고 거기서 준비해 주는대로 물건을 가지고 한국에 도착했다.

미국에서 오면서.. 큰 이민가방 하나를 가져왔으면 선물을 꽤 가져왔나본데..

왜.. 안풀지?  가방을 본 사람은 궁금했을 것이다.

 

미리, 주문이 되있었겠지만..  한국에서 받을 사람에게 리스트가 따로 전달되기에

포장을 뜯어 볼 수도 없고 승객에게 무료로 허용된 화물양에 맞춰진 분량이라 

별도로, 운임을 써가며 귀국선물을 가져 가기도 쫌~ 그렇다.

 

문제는 내가 아버님집에 가기전에 모르는 사람과의 이 더러운 거래를 끝내고 

아무도 모르게 할 수있으면 제일 좋은건데..

동생이 공항으로 마중나와 곧장 아버님집으로 가는 바람에 그러질 못했다.

 

아버님과 함께 살고있는  큰 형네 가족들 눈에 꼼짝없이 뜨이고 나서야 물건을 주고 돈을 받았다.

지금은 여행자유화가 되어 이런 바보짓하는 사람이 없겠지만.. 절대 하지말기 바란다.

 

뭐가 들었는지도 몰랐던 물건들을 인수자가 확인하는데.. 불량이라고 빼고.. 환율도 자기 맘대로다.

이 돈을  딸라(미국돈)로 바꿔달라고 큰 형한테 맡겼는데..

 

미국으로 돌아오는 날 아침까지 아무 말 없다가  아버님의 돈을 주라는 독촉에

그때서야  큰 형한테서 건네 받았다.

 

지금 생각하니.. 그날 아침, 큰 형한테서 돈 받았냐고 물어보신걸 보면..

형이 순수하게 본인의 돈을 동생에게 주는 것으로 오해하셨을지도 모르겠다.

따로, 세째인 나에게 돈을 안주신 걸로 미뤄 짐작컨데..

 

뭐~ 얼마 안되는 거긴 하지만,

아버님께선 내가 물건 가져오고 이런 거 모르셨을테니.. 차라리 다행이다.

 

 

한국도착 첫날, 그날이 토요일이였던거 같다.  

큰 형이 교통비로 쓰라고 십만 원을 줘서 받았으며 다음 날이 주일이라  교회에 갔다.

 

헌금 시간이 있었는데..  돈의 크기(가치)를 모르니.. 얼마를 해야 할 지를 모르겠다.

마침, 옆의 아주머니가 천원을 봉투에 넣는 걸 봤다.

 

그래서, 아! 만원정도면 되겠구나하고 만원인가..? 삼 만원을 헌금했다.

솔직히, 만원과 삼 만원 사이에서 갈등이 있었기에.. 어느 쪽을 선택했는지 기억에 없지만..

 

근데, 큰 형이 액수를 어떻게 알았는지..  

아버님 칠순이신데  감사헌금으로 오 만원은 했어야 하는거 아니냐며..  

부자이신 아버님과 함께 살고 있으니 부족한걸 모르고 지내는 큰 형이

내,형편은 알지도 못하면서.. 많은 핀잔을 줬다. 

 

나는 교회에 헌금하며 기본으로 이름을 안쓴다 근데, 그땐 이름을 썼었나보다.

나중에 알았다. 큰 형이 헌금을 정리하고 관리하는 회계 담당이라는 걸..

 

근데, 한국에선 만.. 십 만..단위가 별거 아니지만,

미국 돈으로 백이니.. 천이란 단위가 큰 돈이라 .. 만이라는 것에서 엄청 크게 느껴졌었다.

 

화폐단위가 서로 다른 곳에선 수박, 한 통에 천원이라면 그게 싼건지 비싼건지 구별이 안간다.

그리고, 만원으로 뭘 할 수있는 크기인지도 모르겠고..

 

 

다음날, 아버님을  따라 광교에 있는 아버님사무실에 나갔다가 

점심하러 가자시며 은행에 들러 십 만원을 인출하여 주시기에..

 

큰 형한테서 받았다고 말씀드렸더니 .. 알고 계시다며 넣어두라고 하셨다.

큰 형은 나한테 돈을 주면서 아버님께 다 보고하고 있었나 보다.

 

한국에서 2주일 있었지만..

절대로, 다시 생각하고 싶지않은 기억들만 가지고 미국으로 돌아 왔다.


어떤  기대를 했던건  아니지만..  한국에 간 사람은 나인데..

가지도 않은 작은 형한테 전하라는 아버님의 현금 심부름과

작은 형한테 더 큰 돈이 전해질 수 있는 연결 심부름만 하고 온 셈이 됐다.

 

이때, 아버님께선 ..  나한테 아무것도 안주셨다.

난, 내돈 써가며 핀잔만 듣고 .. 누군 앉아서 도랑치고 가재줍고..

 

그리고, 내가 갔을땐 그냥 지나가더니..

그 다음 해에  아버님 칠순잔치를 했다는 그런 소식도 들리고.. 쩝~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