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전부터 계획이 있었다.
2006년4월, 고국 방문중 발생한 뇌출혈이 있기 전 14년동안 나에게 이런 일들이 있었다.
첫째, 내가 미시민권자가 되었다.
영주권자로 미국에 와서 처음엔 장사도 했지만, 다~ 정리하고 회사에 취직하여
일한지 10년을 바라보고 있을 즈음 .. 지금의 아이들이 은퇴할때가 되면 연금으로 줄
돈이 바닥난다는 말이 심심치않게 들릴때, 연방정부에서 영주권자의 혜택은 점차 줄이고
궁극적으로 시민권자에게만 혜택을 줄꺼라는 발표를 했다.
앞으론 시민권자가 아니면 정부에서도 나 몰라라할꺼란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엔 계속 일을 할 생각이였기에 내,가족 생활비 걱정이 없는데..
만약, 내가 먼저 죽게되면.. 남아서 어린 두아들을 책임져야 하는 아내가 염려되어
평소에 Social Tax를 많이 내서 점수가 높기에 배우자는 그 절반을 받을 수 있는 걸로 알고
사회 보장 혜택을 받게 하기 위해서 아내만큼은 시민권자가 되있어야겠단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는..
어느 자리에서 들은 시신 검시소의 끔찍한 얘기에 은퇴하면 한국에 가서 살다 죽을꺼라며..
한국 국적을 유지하려 아내만 시민권신청을 해서 진행이 되다가
마지막 인터뷰에서 그당시 대통령을 막 물러난 클린턴과 루윈스키의 부적절한 사이를 칭하는
Zipper Gate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심사관이 물었단다.
그냥, I don't know !!! (모르겠는데..)하던가
I'm not interested in it. (내, 관심사가 아니거든..)했으면 됐을지도..
근데, 영어를 못하는 내가 들어도 짜증이 팍팍~나는..
(상관안해.. 그래서 뭐~~?)의 뉘앙스가 풍기는 I don't care !! 라고 했다나?
시민이 되겠다는 사람이 시민의 대표에 대해서 상관을 안하겠다니..? 그래서 실패를 하고
세상일은 모르기에.. 부부중 한사람이라도 시민권을 갖자고 해서 내가 시민권자가 되었다.
둘째, 생명보험에 들었다.
혈압은 높지도.. 낮지도 않은 정상이지만..
가정 주치의인 LA 밸리의 모모병원에서 검사결과 (애네들이 미치지않고서야..)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1000을 넘는다고.. 켁
약을 매일 먹고 있어서 신청해 봐야 안될꺼라고 스스로 생명 보험가입을 포기했었다.
어느 날, 내가 일하는 회사 사무실에 보험회사 사람이 와서 설명중이였는데.. 간단했다.
(이전이나 이후에 외판사원이 올 수도.. 온 적이 없다)
약속한 날에 사람이 와서 피를 채취해 검사후 가입여부가 정해진다고..
비용도 무료라기에.. 신청했다.
같은 보험회사에 아는 사람이 있다고 했더니.. 패스되면 그사람으로 연결을 해주겠다고도
근데, 뜻밖에 패스가 되어 70세 생일이 되는 날까지만 보장이 되고 이후엔 소멸되는
유한 기간이긴 하지만 저렴한걸로 가입을 했다.
셋째, 한국에서 내,앞으로 돈이 생겼다.
난, 이돈을 미국으로 가져 오지않고 큰형에게 3~4년간 맞겨 놓은 상황이였다.
넷째, 직장 의료보험. 시기적으론 이게 제일 먼저다.
이민와서 장사를 하면서도 마찬가지였지만
92년 회사에 취직했을때도 회사에 의료 보험자체가 없었는데 내가 이회사에 들어와 열심히
일 한 탓에(ㅋㅋ~) 회사는 크게 성장하고 드디어, 2~3년지나 휴가제도와 의료보험이 생겼다.
내회사인냥, 14년을 성실하게 일을 했으며.. 나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사장과 부사장뿐이였다.
회사가 더커지면서 장례보험이 추가되기도 했다.
다섯째, 2001년, 집을 산 이듬 해에 내집을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에게 물려줬다.
해서 내,이름으로 되어있는 재산은 아무것도 없다.
어떻게 보면.. 난, 언제라도 떠 날 준비가 온전하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내,운전면허증의 유효기한이 2006년 내,생일인 6월까지였는데..
두달을 남기고, 내,부모님의 땅에 내,아내와 함께 갔을때 뇌출혈이 생겼다.
죽을 확률 85%에.. 그나마 살아나도 식물인간.
내,동생의 집에서 앰블런스를 불러 일찍, 병원으로 갈 수 있었으며..
1차로 간 강북삼성병원에서의 적절한 지혈수술후 당직이 없어 병원을 옮기라하여
큰형님의 의사 아들덕분에 밤,늦은 시간.. 2차로 간 중대용산병원에서
조카의 선배, 의사샘 집도로 죽을 확률 85%, 살아나도 식물 인간일 꺼라는.. 근데, 살아났다.
물론, 내가 맞겨논 돈이랑 상관없이 나의 형제가 보증금을 들고 달려왔겠지만 .. 여튼,
그후엔, 직장의 미국 의료보험이 한국에 머무는 나를 도왔으며..
아시아나 항공에 근무하던 큰아들의 도움으로 편하게 미국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운전면허는 기한을 넘겨 효력이 없어졌고
칠십 내,생일 지나 죽으면 어차피,내,인생하고 전혀 상관없는 생명보험이지만 꽝인게 억울해
페이먼트가 두배를 넘겨도 가입시 마음에 담았던 의미를 유지하기 위해 무기한으로 바꿨다.
시민권자인 덕분에 사회 보장 혜택을 신청하였는데..
들르는곳마다 시민권자 여부? 재산소유 유무..? 를 꼭~ 물어보더라..
그런데, 지팡이 사용을 안해서였는지.. 첫번 의사의 일할 수 있다는 판정으로 O.K 싸인은 안나고
두번째, 세번째 의사의 일을 할 수 없다는 소견이 들어가서도 일년반 넘도록 내돈을 다까먹고
이제, 더이상 버틸 수 조차 없게 되었을 때 청문회날이 잡혔다.
청문회 대기실 의자에 앉아서.. 더도, 덜도 말고 보이는 그대로 심사관이 판단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했다.
심판관은 판사였는데.. 옆의 보좌관에게 신청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는지..? 를 물었는데..
컴퓨터를 두둘기더니.. Casher( 돈,받는이)를 할 수 있단다. 앉아서 그것도 두시간 이내..
요즘, 기금부족으로 혜택을 받는 사람들에게 지급되는 금액이 줄어든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받는 혜택은 이와달라서 줄어들지는 않는다.
그러고 보니.. 난, 내자신이 득을 보기위해 무엇이 되려고 한 적은 없었던거 같다.
마음을 비운다고 했던건 아닌데.. 필요 충분조건인 나자신의 다섯가지를 변화시켜 놓으시고
나머지 + 알파( 의사인 큰조카와 선배의사, 항공사에 근무하던 큰아이)를 그자리에 준비하시어
날,지키시는 분께서 알아서 다~ 해 주셨더라.
지금, 이중으로 겹쳐 보이는 눈의 장애가 남았지만.. 분명, 계획에 있을 것이다.
그날을 위하여 오늘도 내,할일을 하며 때를 기다릴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