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부산에 도착하다.
6월 25일, 조용하기만 했던 일요일 아침,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포성이 울리며 전쟁이 터지자
피난을 가기위해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려고 회현동에 살고 있는 사촌 누이집에까지 갔다.
서울을 탈출하려는 사람들의 북새통속에 이틀만인 27일에야 겨우 기차에 올라 서울역을 빠져 나갔다.
이 열차가 서울을 빠져 나간 마지막 열차란걸 나중에 한강다리 폭파소식과 함께 알게 되었으며
서울, 이북에 있는 북한강과 의정부쪽의 다리폭파에 실패하여 조급해진 국군은...
국군의 보잘것 없는 화력엔 끄떡도 없는 인민군의 소련제 T-54 탱크의 쾌속질주에 공포감까지 갖게 된
군 통수권자들에 의해서.. 이제 겨우 인민군의 탱크가 미아리고개에 나타났을 뿐인데...
피난민과 피난 길에 오른 자동차로 뒤엉켜 꽉 막힌 한강다리를 아무런 제지나, 대책도 없이
북진하고 있다고 헛소리하던 대통령과 상위 지휘계통만 살겠다고 한강이남으로 도망가고 나자
28일 새벽에 국군에 의해서 미리 설치하여 두었던 폭탄을 터뜨려 끊어진 것도 알게 되었다.
어딘지는 모르지만 ... 아마, 천안이나 대전쯤, 기차가 더 이상 가지 못하고 멈추자...
거기서 부터는 내려서 걸어가게 되었다.
아득하게 포성은 들렸지만 아직, 여기엔 전쟁의 기운은 없었고 보이는 곳마다 평화로웠다.
지나가는 농부의 한가한 소달구지에 큰아들,기현과 둘째,기인을 태우기도 하고...
한강,이남으로 멀리 내려 갈수록 들녁은 이제 모내기를 해야 할 시기인데...
농사짓는 농부들한텐 전쟁따윈 아랑곳 없는지
모내기를 준비하는 논이 보이면 가서 자청하여 돕고는 피난길에 지친 몸을 신세지기도 하였다.
평안도 고향에서 어려서부터 거들었던 농사 일인 탓에 익숙하기도 하였지만...
술, 담배를 하는 사람들은 술과 담배를 요구하며 틈틈히 쉬기도 하였지만
정학선과 그의 가족들은 술, 담배를 안하기에 쉬지도 않고 공연히 쓸데없는
요구사항도 없이 빠른 손놀림으로 남들 보다 빠르고 가지런하게 모내기를 마치니...
발,없이도 앞서 가는 빠른 소문으로 인해 가는 곳마다 자기네 논, 모내기에도 일손을 거들어
주기를 바라는 간청으로 모내기를 돕기도 하며
또, 교회가 있는 곳에선 교회로 찾아가서 하나님께 보살펴 주시기를 기도로 간구하였다.
그 결과 먹는것, 잠자는것 걱정없이 전라도 내륙으로 해서 남해지방,하동을 거쳐 부산에 도착했다.
휴전후, 정학선은 피난길에 도움받았던 곳들을 차례로 방문하여 고마움을 표,했었는데...
한번 가 본곳은 지도를 그릴만치 기억력이 좋으셨음에도
어찌된 영문인지... 하동에서 신세졌던 교회만은 영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피난민들로 해서 부산이 이름대로 부산스러워 졌다.
최후의 방어선인 낙동강전선에선 죽기 살기로 싸우는 탓에 강물은 이미, 피빛이 되어 흐르고 있었다.
영도다리를 건너자 바로 있는 곳에 허름하긴해도 방을 구해 생활하게 되었다.
인연이란 참으로 묘하다.
악연은 절대로 만들지 말아야 겠지만 좋은 인연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동행하고 계심을 느끼게 된다.
구태어 밖에 안 나가고도 유리창을 통하여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보고 바람이 부는 걸 알게 되는 것처럼...
귀한 인연이란 다름아닌 의정부에서 함께 조선장유에서 일하던 사람들과 박사장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고
이번엔 부산에서 시작부터 같이 하게 되었다.
조선장유에서 만들던 고추장, 된장, 간장등은 625전부터 군납으로 국군의 중요한 부식꺼리 였다.
부산으로 옮긴 육본의 담당관인 모 대령을 만나 다시 납품을 하게 되었다.
길거리에서 헌병들이 지나가는 청년이나 심지어는 학생들까지도 검문하여 군으로 끌고 가고 있었다.
어느 날, 부인,이성옥과 고향의 동생뻘 되는 사람등 셋이서 외출중에 하나님의 사람, 정학선과 동생이
헌병의 검문으로 따로 모아 놓은 사람들 틈에 서게 되었다.
이에, 부인 이성옥은 거칠게 항의, 사정하여 남편, 정학선만 동행하여 집으로 올 수 있었다고...
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 그때 군대에 갔다가 살아 돌아 온 동생뻘 되신 분께서 무척 서운 했었다고... 했다.
뭐, 나중에 신분확인이 되면 군납계통에 종사하니 현장으로 돌아 올 수도 있었겠지만...
동생뻘 되신 분은 그 당시 총각이여서 어떻게 상황이 달라졌을지는 모르겠다.
여튼,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있지만 결혼한 여자도 얼마든지 강해 질 수가 있다.